※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다.

어제가 친구 생일이었는데 같이 만나서 미키17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에서 크리퍼는 상호 대화가 가능한 고지능의 토착 생물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퍼의 울음 공격이 거짓말이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왜 이 장면이 들어갔을까 의문이 들었다. 울음 공격 부분은 수 많은 크리퍼가 아기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서 우주선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일종의 강강술래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크리퍼가 아기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서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이타적인 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물론 크리퍼가 인간을 공격할 수단이 없어서 최종 수단으로 블러핑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크리퍼는 어떻게 이러한 집단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공상이지만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봤다. 인간은 대규모의 집단 행동을 하기 위해서 모두가 공통으로 믿는 허구(e.g. 국가, 자본주의, 종교 등등)가 필요하다. (허구라는 것은 대상이 거짓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모래나 중력 같은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거나 뭐라고 부르던 간에 실재한다. 앞서 서술한 허구는 관념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반대로 개미나 벌은 유전적 프로그램이 대규모 집단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크리퍼도 개미나 벌처럼 유전적으로 공격적 행위 자체를 모르도록 되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퍼의 언어에는 공격에 관련된 단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설정은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크리퍼는 인간보다는 개미와 벌에 가까운 모습도 보인다. 한 가지는 마더 크리퍼의 존재다. 물론 단순히 대변인이 필요해서 추가한 것일 수도 있다. 크리퍼는 대략 애기 크리퍼와 보통 크리퍼, 마더 크리퍼가 있는데 마더 크리퍼는 한 명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마더 크리퍼를 중심으로 개별 크리퍼가 느낀 경험을 입으로 발화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크리퍼 간의 관계가 서로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마더 크리퍼를 중심으로한 수직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마더 크리퍼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체계가 될 것이다. 여왕 개미나 여왕 벌처럼 종 존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묘사되지 않았다. 개별 크리퍼는 집단에서 유별난 행동을 하지 않고 협력이 필요한 행동을 의사소통 없이 일제히 수행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한편 모든 크리퍼에게 이름이 있고 개별 크리퍼에게 충분한 행동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다.

크리퍼도 인간처럼 동일한 행동을 하게 하는 어떤 허구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형질이 있고 모든 크리퍼가 평화적 행동을 하게 하는 정말 강한 믿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믿음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먼저 다수의 사람들이 우주선의 대표격인 사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행동에 영향을 주는 믿음은 새로운 행성에 가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그 사람이 이러한 이주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대표격인 사람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종교적인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사상에 신이라는 허구적 존재를 덧붙여 정당화하는 것이다. 대표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고 느낀 등장인물도 항의를 하다가 이러한 종교적 찬양에 즉시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해당 종교의 신이 실재하며 자신을 보호 또는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불가지론자이고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다. 신의 존재성과 신이 실제로 인간 세상에 관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적 허구는 의심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종교가 위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등 같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는 사상 역시 종교적 허구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은 공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종교적 허구를 이용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평등같은 보편적인 사상도 종교적 허구보다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허구를 믿으며 종교적 허구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결말이 너무 속전속결로 전개되어 아쉬웠지만 재밌게 본 영화였다.